창세기 35장
이 장에 대한 메모
라헬은 왜 그렇게 일찍 죽었을까?
창세기 35장 16~20절에서 라헬은 벧엘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다.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였고, 자식은 요셉과 베냐민 둘뿐이었다. 오래 기다려 얻은 둘째를 안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성경은 라헬이 왜 이렇게 일찍 죽었는지 이유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 안에 몇 가지 실마리가 있다.
1. 야곱이 자기도 모르게 내린 저주
라반이 드라빔을 찾으러 왔을 때 야곱은 "누구에게서 당신의 신을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라"(31장 32절)고 말했다. 야곱은 라헬이 훔친 줄 몰랐다. 유대 전통의 해석은 이 말이 라헬에게 그대로 돌아갔다고 본다. 성경이 두 사건을 직접 연결하지는 않지만, 야곱이 집안의 이방 신상을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 묻은 일(35장 4절) 바로 뒤에 라헬의 죽음이 놓여 있는 순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우상과 함께 살던 시대가 끝나면서 그 우상을 품었던 사람도 떠난 것이다.
2. 라헬 자신의 말
라헬은 자식이 없을 때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30장 1절)고 했다. 그리고 요셉을 낳고는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30장 24절)며 아들 이름을 요셉("더하다")이라 지었다. 라헬은 그 소원대로 다른 아들을 얻었고, 바로 그 아들을 낳으면서 죽었다. 자식이 없으면 죽겠다던 여인이 자식을 낳으며 죽은 것이다. 성경은 이 아이러니를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 준다.
3. 길 위에서 맞은 난산
당시 여인에게 출산은 늘 목숨을 건 일이었다. 라헬은 이미 늦은 나이였고, 벧엘에서 헤브론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 진통이 왔다. 산파가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35장 17절)고 위로한 것을 보면 상황이 이미 위태로웠다. 하나님의 특별한 심판이라기보다,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난 죽음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4. 짧은 생애가 남긴 긴 자취
라헬은 일찍 죽었지만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오래 남았다. 그의 아들 요셉은 온 집안을 살렸고, 베냐민 지파에서는 사울 왕과 사도 바울이 나왔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룻을 축복하며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룻기 4장 11절)를 먼저 말했다. 예레미야는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을 보며 "라마에서 슬퍼하는 라헬"(예레미야 31장 15절)을 노래했고, 마태는 헤롯에게 아이들이 죽임당할 때 그 말씀을 다시 인용했다(마태복음 2장 18절). 라헬은 자식을 위해 우는 어머니, 곧 이스라엘 전체의 어머니로 기억되었다. 라헬의 무덤이 베들레헴 길가에 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것도 우연 같지 않다.
5. 마지막 이름에 담긴 뜻
라헬은 죽어 가며 아들을 베노니("내 슬픔의 아들")라 불렀다. 야곱은 그 이름을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으로 바꾸었다(35장 18절). 어머니에게는 슬픔으로 끝난 생명이 아버지에게는 힘과 축복의 아들이 되었다. 라헬의 생애도 그렇다. 그 자신에게는 기다림과 슬픔이 많은 짧은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인생에서 오른손의 축복을 꺼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수명의 길이로 재는 것이 아니다. 레아는 오래 살아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야곱과 함께 묻혔고(49장 31절), 라헬은 짧게 살아 길가에 묻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두 어머니를 다 기억했고, 성경은 라헬의 눈물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네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예레미야 31장 17절)고 약속하셨다고 증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