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
이 장에 대한 메모
야곱은 왜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 머물렀을까?
창세기 33장 12절 이하에서 에서는 "함께 가자"고 했고, 야곱은 아이들과 가축이 약하니 천천히 세일로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야곱은 세일로 가지 않았다. 숙곳에 집을 짓고 짐승 우리를 만들었으며(33장 17절), 그다음에는 세겜 성읍 앞에 땅을 사서 장막을 쳤다(33장 18~19절).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딸 디나가 세겜에게 욕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34장). 왜 이런 길을 갔을까?
1. 세일은 야곱이 갈 곳이 아니었다
세일은 에서가 자리 잡은 에돔 땅으로, 사해 남동쪽 산지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명령은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31장 3절)였고, 야곱 자신도 벧엘에서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돌기둥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28장 20~22절)이라고 서원했다. 야곱이 돌아가야 할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과 벧엘, 그리고 헤브론의 아버지 이삭이었지 에서의 땅이 아니었다. 그 점에서 세일로 가지 않은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2. 그러나 형을 또 속인 것은 옛 습관이었다
문제는 야곱이 에서에게 "세일로 뒤따라가겠다"고 말해 놓고 처음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20년 만에 화해한 형 앞에서, 그리고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다음 날에, 야곱은 여전히 거짓말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형과 함께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면 솔직히 말할 수도 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어도 "야곱"(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의 성향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성경은 이후로 야곱과 에서가 아버지 장례 때 만난 것 외에는(35장 29절) 다시 함께한 기록이 없다.
3. 숙곳과 세겜에 "정착"한 것이 문제였다
야곱은 잠시 쉬어 간 것이 아니었다. 숙곳에서 집과 우리를 지었다는 것은 장막이 아니라 건물을 세웠다는 뜻으로, 상당히 오래 머물렀음을 보여 준다. 그다음 세겜에서는 은 백 개를 주고 땅을 샀다. 그는 벧엘 서원도, 아버지 이삭도 뒤로 미룬 채 가나안 성읍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세겜에 세운 제단 이름 "엘엘로헤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 엘)은 좋은 고백이지만, 하나님이 명하신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34장 사건 뒤에야 하나님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35장 1절)고 말씀하신다.
4. 디나 사건과 야곱의 책임
디나를 욕보인 것은 세겜이고, 그 죄는 세겜의 것이다. 야곱이 딸을 그런 일에 내몰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방 성읍 바로 옆에 오래 머무는 동안 딸이 "그 땅의 딸들을 보러"(34장 1절) 성읍에 드나들게 되었고, 그 결과가 이 사건이다. 야곱은 사건을 듣고도 "잠잠하였고"(34장 5절), 시므온과 레위가 성읍을 도륙한 뒤에도 딸의 일보다 "이 땅의 주민이 나를 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4장 30절)는 자기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 이 장 전체에서 야곱은 아버지로서 무기력하다.
5. 이 사건이 야곱에게 남긴 것
디나 사건은 야곱을 세겜에서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을 때 야곱은 비로소 집안의 이방 신상을 다 거두어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35장 2~4절) 벧엘로 갔다. 20년 전 서원한 그 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네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리라"(35장 10절)고 확인해 주셨다. 곧 얍복에서 받은 이름이 벧엘에서 비로소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야곱이 곧장 벧엘로 갔다면 없었을 아픔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픔을 통해서라도 야곱을 서원한 자리로 이끄셨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거의 다 온 곳"에 눌러앉으려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때 치르는 대가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식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겜과 하몰은 왜 온 성읍에 할례를 시키면서까지 야곱의 집안과 통혼하려 했을까?
창세기 34장을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세겜은 그 땅의 추장 하몰의 아들이고, 야곱 집안은 그 땅에 막 들어온 나그네였다. 딸 하나 때문에 온 성읍 남자가 할례를 받는 수고를 감수했을까? 힘으로 눌러 버리면 될 일을 왜 그렇게 했을까? 본문을 자세히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드러난다.
1. 야곱의 집안은 "몇 안 되는 소수"가 아니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심히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다"(30장 43절).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러 훈련한 종만 318명을 거느렸고(14장 14절), 야곱도 에서를 만날 때 예물로만 가축 550마리를 보냈다(32장 13~15절). 그런 규모의 가축을 돌보려면 종과 목자가 수백 명은 있어야 한다. 시므온과 레위 둘이 성읍 남자를 다 죽였다는 것도, 두 사람이 각자 거느린 종들을 데리고 갔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면 세겜은 당시 큰 도시가 아니라 작은 성읍이었다. 하몰 쪽에서 볼 때 야곱의 집안은 힘으로 간단히 제압할 상대가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성읍 전체가 위험해질 무장한 큰 집단이었다.
2. 하몰의 진짜 계산은 야곱의 재산이었다
하몰이 성읍 사람들을 설득한 말에 속마음이 다 들어 있다.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34장 23절). 하몰에게 이 혼인은 아들의 사랑 문제가 아니라 사업이었다. 통혼으로 야곱의 집안을 성읍 안에 끌어들이면 그 막대한 가축과 종이 결국 세겜 성읍의 것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할례라는 대가는 그 이익에 비하면 값싸게 보였을 것이다. 성읍 사람들이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34장 24절) 다 따른 것도 그 이익을 보았기 때문이다.
3. 할례는 그 지역에서 낯선 일이 아니었다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관습이 아니었다. 애굽 사람들과 에돔·암몬·모압 등 주변 민족들도 할례를 행했다(예레미야 9장 25~26절). 다만 블레셋 사람은 하지 않아서 "할례 받지 않은 자"라고 불렸다. 그러니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는 야곱의 집안과 한 백성이 되기 위한 통과 의식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목숨을 거는 일이 아니라 며칠 아픈 일이었다.
4. 세겜은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자였고, 이미 일을 저지른 뒤였다
세겜은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한 자"(34장 19절)였다. 아버지가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위치였다. 그리고 세겜은 디나를 먼저 욕보이고 나서 사랑에 빠졌다. 이미 상대 집안에 큰 죄를 지은 상태에서 혼인으로 수습하려는 것이었으니, 야곱의 아들들이 내건 조건을 거절하면 원한을 산 채로 무장한 집단을 옆에 두게 된다. 세겜 입장에서도 조건을 들어주는 편이 안전했다.
5. 하몰과 세겜은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했다
야곱의 아들들은 "속여 대답하였다"(34장 13절). 할례를 요구한 것은 한 백성이 되자는 뜻이 아니라, 셋째 날 "고통을 당할 때"(34장 25절) 성읍 남자들이 저항할 수 없게 만들려는 계략이었다. 하몰과 세겜은 이 조건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들에게 이 일은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고, 상대가 복수를 계획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6. 성경이 이 일을 보는 눈
세겜은 힘으로 여인을 욕보였고, 하몰은 통혼을 재산 늘리는 수단으로 삼았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 표징인 할례를 살인의 도구로 썼다. 이 장에는 옳은 사람이 없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시므온과 레위를 축복하지 않고 "그들의 분노가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49장 5~7절)고 말했다. 두 지파는 훗날 땅을 따로 받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야곱의 집안이 가나안 성읍과 섞이지 않게 만들었고, 야곱을 벧엘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35장 1절). 사람의 탐욕과 잔인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약의 집안을 세상과 구별하여 지키셨다.
레위의 흩어짐 — 벌인가, 복인가
레위는 누이 디나의 일로 형 시므온과 함께 세겜 사람들을 속여 모두 죽였습니다(창 34장). 야곱은 죽기 전 이 일을 꾸짖으며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창 49:7).
실제로 레위 지파는 가나안 땅을 나눌 때 자기 몫의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끝까지 벌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따라가 보면 벌이 복으로 바뀌는 과정이 보입니다.
| 본문 | 사건 | 담긴 뜻 |
|---|---|---|
| 창 34장 |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핑계로 세겜 남자들을 죽임 | 정의를 내세웠지만 속임수와 지나친 분노로 한 일 |
| 창 49:5~7 | 야곱이 두 아들의 분노를 저주하고 "흩으리라"고 말함 | 사람이 아니라 "분노"를 저주함 — 분노가 방향을 잃은 것이 문제 |
| 출 32:26~29 | 금송아지 사건 때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를 부르자 레위 자손만 모세에게 모임 | 같은 열심이 이번에는 하나님 편에 섬 — 이 일로 하나님께 헌신됨 |
| 민 18:20 | "나는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 땅 대신 하나님 자신이 레위의 몫이 됨 |
| 민 35장 수 21장 |
각 지파 땅 안에 레위 사람의 성읍 48곳을 줌 | "흩어짐"이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온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퍼지는 길이 됨 |
| 신 33:8~11 | 모세가 레위를 축복함 — 율법을 가르치고 제단을 섬기는 지파 | 야곱의 저주가 모세의 축복으로 바뀜 |
| 수 19:1~9 | 같이 벌을 받은 시므온은 유다 땅 안에 끼어 살다가 점점 흐려짐 | 같은 벌을 받아도 돌이킨 레위와 그렇지 못한 시므온의 끝이 달라짐 |
이 장의 핵심
레위가 땅을 받지 못한 것은 처음에는 분명히 죄의 결과였습니다. 성경은 세겜에서의 잔인한 복수를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위는 금송아지 사건 때 그 뜨거운 성품을 하나님 편에 서는 데 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벌을 없애지 않으시고, 벌의 모양은 그대로 둔 채 그 뜻을 바꾸셨습니다. 흩어짐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이 온 이스라엘을 섬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의 이야기는 "벌이냐 복이냐"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돌이킨 사람에게는 벌조차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땅보다 더 큰 몫, 곧 하나님 자신을 받은 지파가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