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장
이 장에 대한 메모
질문: 아브람은 왜 아내를 누이라 하여 다른 남자에게 내주었나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그리고 성경도 이 행동을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실패로 기록되어 있다.
1.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된다
애굽에서 바로에게(창 12:10-20), 그랄에서 아비멜렉에게(창 20장), 그리고 아들 이삭이 리브가에게 똑같은 일을 한다(창 26:6-11).
세 번째가 결정적이다. 아버지의 실패가 아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감추지 않고 세 번이나 실었다는 사실 자체가 서술자의 평가다.
2. "누이"라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실제로 이복 누이라고 말한다(창 20:12).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의 절반만 말해 아내를 위험에 빠뜨렸다. 거짓말 중에서도 교묘한 종류다.
3. 동기는 두려움이었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 이유를 밝힌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자기가 죽임을 당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창 20:11).
그러나 그 두려움이 향한 방향이 문제였다.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아내를 방패로 삼았다.
4. 그런데 사라의 나이가 몇 살이었나
애굽 사건 때 아브람은 75세를 갓 넘겼고, 사라는 그보다 열 살 아래이므로(창 17:17) 65세 안팎이었다.
그랄 사건은 이삭이 태어나기 직전이니 사라는 89세쯤 된다. 늙은 여인을 왕이 데려갔다는 대목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5. 수명이 길었으니 젊었다는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라는 127세에 죽었으므로(창 23:1) 89세를 오늘날 90세 수명에 비례로 옮기면 63세쯤 된다. 그러나 이 계산으로는 왕이 후궁으로 데려갈 만한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본문 자신이 그 설명을 막는다. 바로 이 무렵 사라는 스스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라고 말한다(창 18:12). 본인이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두고 여전히 아름다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문을 거스르는 읽기다.
6. 그랄 사건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없다
애굽 사건에는 "아리따운 여인"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나온다(창 12:11, 14). 그러나 창세기 20장에는 그런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간 이유를 본문은 밝히지 않는다. 미모라는 이유는 우리가 넣어 읽은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왕이 유력한 족장의 여자를 취하는 것은 혼인 동맹이자 세력 확보의 수단이었다. 아브라함은 318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왕들과 싸워 이긴 사람이었고(창 14:14-16), 아비멜렉은 작은 성읍의 왕이었다.
실제로 아비멜렉은 얼마 뒤 아브라함에게 먼저 조약을 청한다(창 21:22-32). 정치적 계산이라는 설명이 본문의 흐름과 잘 맞는다.
7. 핵심은 신앙의 실패다
창세기 12장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2-3).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애굽에 내려가자마자, 약속을 지켜주실 하나님보다 애굽 왕을 더 두려워했다.
더구나 아내를 넘긴다는 것은 약속의 자손이 태어날 통로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다.
결국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바로와 아비멜렉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신다(창 12:17, 20:3). 아브라함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셨다.
8. 이방 왕에게 책망받는 믿음의 조상
바로와 아비멜렉이 오히려 아브라함을 꾸짖는다(창 12:18-19, 20:9-10). 믿음의 조상이 이방인에게 도덕적으로 책망받는 장면이다. 서술자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9. 이 이야기를 읽는 방법
성경은 아브라함을 지우거나 다듬지 않고, 두려움에 무너지는 모습 그대로 남겨두었다.
로마서가 그를 믿음의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결국 그 약속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다(롬 4:18-21).
믿음은 실패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실패하고도 다시 그 약속으로 돌아오는 걸음이다.
핵심 성구
창세기 12:10-20 / 14:14-16 / 17:17 / 18:12 / 20:1-13 / 21:22-32 / 23:1 / 26:6-11, 로마서 4:1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