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이 장에 대한 메모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을까 (창 2:16~17, 3장)
먹을 줄 아시면서 왜 두셨을까. 이 질문은 결국 "왜 하나님은 죄가 가능한 세상을 만드셨나"라는 질문이다. 성경은 이 질문에 논리 공식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 전체로 답한다. 아래는 그 이야기에서 읽어 낼 수 있는 몇 가지 답이다.
1. 선악과는 함정이 아니라 관계의 표시였다
동산의 모든 나무는 먹어도 되었다. 금지된 것은 단 하나였다. 이것은 억압이 아니라 최소한의 경계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해 주는 표시였다. 그 나무를 먹지 않는 한, 사람은 매일 "나는 내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사는 셈이었다.
사랑은 선택할 수 있을 때만 사랑이다. 거절할 수 없는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다. 하나님은 로봇이 아니라 인격을 원하셨고, 인격에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선악과는 그 "아니오"가 놓일 자리였다.
2. 하나님이 인류를 "지혜롭게" 만드시려고 두신 것일까
뱀은 그렇게 말했다.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된다"(3:5). 그러나 실제로 열린 눈이 본 것은 자기 벌거벗음과 두려움이었다(3:7~10). 선악을 아는 지식은 생겼지만, 그것은 선을 알고 행하는 지혜가 아니라 악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죄를 통해 인류를 성숙시키려고 선악과를 두셨다는 해석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의 교육 수단이 아니다. 죄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으나 허용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그 허용된 죄까지도 결국 선으로 바꾸신다(창 50:20, 롬 8:28). 허용하신 것과 계획하신 것은 다르다.
3. 아셨으면서 왜 막지 않으셨나
막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선악과를 아예 두지 않거나, 사람의 의지를 빼앗거나. 첫째는 선택 없는 세상, 둘째는 인격 없는 세상이다. 둘 다 하나님이 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모르셨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그 대가를 자신이 치르기로 하셨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은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어린양이라고 한다. 선악과가 동산에 서기 전에 이미 십자가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하나님은 타락을 허락하시면서 동시에 그 값을 자신이 지불하기로 정하셨다.
4. 한 사람이 먹었는데 왜 모두가 죄인인가
가장 아픈 질문이다. 로마서 5장은 이렇게 답한다. 한 사람 아담으로 죄와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왔듯이, 한 사람 그리스도로 의와 생명이 모든 사람에게 온다(롬 5:12~19). 인류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은 저주의 통로였지만, 바로 그 사실이 구원의 통로도 되었다.
만약 사람이 각자 따로따로였다면 아담의 죄가 나에게 오지도 않았겠지만, 그리스도의 의도 나에게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다 죄인이 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의인이 될 수 있는 구조와 같은 구조다.
또한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아담이 먹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죄인이 된 것이 아니다. 아담의 자리에 내가 있었어도 먹었을 것이다. 3장의 이야기는 옛날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내 이야기다. 아담은 인류의 첫 사람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의 초상이다.
5. 결국 무엇을 얻게 되었나
타락 전 아담은 죄 없는 상태였지만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언제든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 떨어지지 않는 영광에 이른다(롬 8:30, 계 21~22장). 마지막 낙원에는 생명나무만 있고 선악과는 없다(계 22:2, 14). 시험 자체가 끝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동산은 첫 동산보다 낫다. 그리고 그 동산의 한가운데는 나무가 아니라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계신다(계 5:6). 하나님은 선악과의 값을 자신이 치르심으로 사람에게서 잃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셨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복된 타락"이라고까지 불렀다. 타락이 복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타락마저 더 큰 복의 재료로 쓰셨다는 뜻이다.
정리
선악과는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놓은 함정이 아니라, 사람을 인격으로 대우하시는 표시였다. 하나님은 타락을 아셨고 막지 않으셨으나, 그 값을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기 아들로 치르셨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첫 동산보다 더 좋은 동산으로 가게 되었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남는다. 하나님도 그 부분을 다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다만 설명 대신 십자가를 보여 주셨다. 그 질문을 하며 살아온 인류 앞에 하나님이 내놓으신 답은 논리가 아니라 자기 아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