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이 장에 대한 메모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을 만나고 언약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한 번(창세기 12장), 그랄에서 또 한 번(창세기 20장), 이삭이 같은 그랄에서 다시 한 번(창세기 26장)입니다.
1. 절반은 사실이었습니다
사라는 실제로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습니다. 창세기 20장 12절에서 아브라함 본인이 그렇게 밝힙니다. 완전한 거짓이 아니라 사실의 일부만 말해 상대를 속인 것이어서, 스스로는 덜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2. 위험은 실제였습니다
나그네는 그 땅의 법이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빼앗기 위해 남편을 죽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인하여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창세기 20장 11절).
3. 순간의 겁이 아니라 미리 마련해 둔 대책이었습니다
창세기 20장 1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방랑을 시작할 때부터 사라에게 어디를 가든지 나를 오라비라 하라고 미리 일러두었습니다. 그때그때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전부터 몸에 배어 있던 생존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오래된 습관은 큰 은혜를 체험한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4. 큰 시험은 통과하고 작은 데서 걸립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서는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기근과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믿음은 모든 영역에서 고르게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놀랍도록 강하고, 어떤 부분은 오래도록 약한 자리로 남습니다.
5. 이삭은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이삭은 같은 지역, 같은 아비멜렉 왕가 앞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약점이 그대로 대물림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감추지 않고 나란히 기록합니다.
6. 언약을 지킨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지키려던 그 거짓말이 오히려 약속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사라가 다른 남자의 집에 들어가면 언약의 아들이 태어날 통로 자체가 끊기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직접 막으십니다. 바로에게는 재앙으로, 아비멜렉에게는 꿈으로 개입하십니다. 언약을 지켜낸 것은 아브라함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도리어 이방 왕들이 그를 꾸짖는 자리에 서는 장면이 세 번 모두 나옵니다(창세기 12장 18절, 20장 9절, 26장 10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