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이 장에 대한 메모
에서는 왜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왔을까?
창세기 32장 6절에서 야곱의 사자들이 돌아와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고 전한다. 야곱은 이 말을 듣고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가족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다. 성경은 에서가 왜 400명을 데리고 왔는지 이유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처음에는 정말 복수하러 나섰다는 해석
20년 전 에서는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27장 41절)고 마음먹었다. 400명은 당시 군사 단위였다. 다윗이 이끌던 무리가 400명이었고(사무엘상 22장 2절), 아말렉을 친 다윗의 군대도 400명이었다(사무엘상 30장 17절). 에서는 이때 세일 땅에서 세력을 이룬 족장이었고(36장), 동생이 큰 재산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된 원한을 갚으러 나섰을 수 있다. 야곱이 그토록 두려워한 것도 이 때문이다.
2. 처음부터 환영하러 왔다는 해석
막상 만났을 때 에서는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울었다"(33장 4절). 이 모습은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원한을 내려놓은 사람에 가깝다. 이 해석에 따르면 400명은 족장이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갖추는 위세이자, 낯선 땅을 지나는 동생 일행을 보호해 주려는 호위였다. 에서가 "내 종 몇 명을 네게 남겨 두겠다"(33장 15절)고 한 말도 이런 뜻으로 읽힌다.
3. 자기 힘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다는 해석
에서는 장자권과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겼다. 그런 동생 앞에 400명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것은 "축복은 네가 가져갔어도 나는 이렇게 되었다"는 과시일 수 있다. 실제로 에서는 야곱의 예물을 받으며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33장 9절)고 한다. 그는 이미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4. 성경이 강조하는 것 — 에서의 마음을 바꾸신 하나님
에서의 처음 의도가 무엇이었든, 성경이 보여 주려는 것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야곱은 400명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고(32장 9~12절), 그날 밤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32장 28절). 야곱은 그 밤을 두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2장 30절)고 했고, 다음 날 에서를 만나서는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33장 10절)고 말한다.
곧 야곱에게 에서의 400명은 자기 꾀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그 벽 앞에서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엎드렸다. 라반의 손을 막으신 하나님(31장 24절)이 에서의 마음도 돌이키셨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잠언 21장 1절)는 말씀대로다. 400명이 복수의 군대로 왔든 환영의 행렬로 왔든, 그날 야곱이 만난 것은 형이 아니라 형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이 왜 북왕국만의 이름이 되었을까?
창세기 32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이 이름은 야곱 한 사람의 이름에서 열두 아들의 자손 전체, 곧 민족의 이름이 되었다("이스라엘 자손", 출애굽기 1장 1절 이하). 그런데 솔로몬 이후 나라가 둘로 갈라지자 북쪽 열 지파만 "이스라엘"이라 불리고, 남쪽은 "유다"라 불리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름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1. 나라가 갈라지기 전부터 "이스라엘"과 "유다"는 따로 쓰였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헤브론에서 먼저 "유다 족속"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을 다스렸고(사무엘하 2장 4절), 나머지 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사무엘하 2장 8~9절). 이때 이미 유다는 하나의 세력이고 나머지 지파 전체가 "이스라엘"이었다. 나중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면서 둘이 합쳐졌다(사무엘하 5장 1~5절). 곧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은 처음부터 "유다"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덩어리가 한 왕 아래 묶인 나라였다. 사무엘하 19장 43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다"며 유다와 다투는 장면이 그 균열을 보여 준다.
2. 갈라질 때 열 지파가 원래 이름을 그대로 가져갔다
열왕기상 12장에서 르호보암이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자 열 지파는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고, 르호보암에게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만 남았다(열왕기상 12장 16~21절). 열두 지파 중 열 지파, 곧 다수가 떨어져 나갔으니 민족 전체의 이름인 "이스라엘"은 자연히 다수 쪽에 남았다. 게다가 세겜·벧엘·실로 등 족장 시대와 사사 시대의 중심지가 모두 북쪽에 있었고, 여로보암은 세겜에 도읍을 정했다(12장 25절). 북왕국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본류라고 여겼고, 남쪽은 "다윗의 집"을 따르는 유다 지파의 나라였다.
3. 남쪽이 "유다"라 불린 이유
남왕국은 사실상 유다 지파 하나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베냐민 지파가 함께했고 시므온 지파는 일찍이 유다 땅 안에 흡수되어 있었지만, 왕가도 영토도 유다 중심이었다. 다윗 왕조는 야곱이 유다에게 준 축복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49장 10절)를 근거로 삼았고, 나라 이름 자체가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담고 있었다. 후대에 이 이름에서 "유대인"(유다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다.
4. 북왕국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
선지서에서 북왕국은 "이스라엘" 외에도 "에브라임"(호세아 4장 17절, 이사야 7장 2절 등)이라 자주 불린다.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가 북쪽에서 가장 강했고 여로보암도 에브라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도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아모스 3장 9절), 첫 왕의 이름을 따서 "요셉의 집"(아모스 5장 6절)이라고도 불렸다. 반대로 남왕국은 "유다", "다윗의 집",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5. 북왕국 멸망 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남쪽으로 돌아왔다
주전 722년 앗수르가 북왕국을 멸망시키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남은 유다를 향해 계속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이사야는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외쳤고, 에스겔은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 백성을 "이스라엘 족속"이라 불렀다. 정치적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은 북쪽이었지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남쪽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 남쪽 공동체는 자신들을 "이스라엘"이라 불렀고(에스라 6장 16~17절, 열두 지파를 위해 숫염소 열두 마리를 드림), 신약에서도 유대인 전체가 "이스라엘"이다(로마서 9장 4절).
6. 정리
"이스라엘"은 야곱 한 사람의 이름 → 열두 지파 민족의 이름 → 분열 뒤 북쪽 열 지파 나라의 이름 → 북왕국 멸망 뒤 다시 하나님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 → 가장 큰 지파 → 다윗 왕조의 나라 → "유대인"이라는 민족 이름이 되었다. 북쪽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져간 것은 다수이자 옛 중심지였기 때문이고, 남쪽이 유다라 불린 것은 그 나라가 유다 지파와 다윗 왕조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 간 쪽은 이름을 빼앗긴 유다였고, 이 유다에게서 "유다 지파의 사자"(요한계시록 5장 5절) 그리스도가 오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