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이 장에 대한 메모
레아와 라헬 — 왜 자식의 수가 이렇게 달랐을까?
창세기 29~30장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질문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레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레아에게는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주셨고, 라헬은 오랜 세월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요셉과 베냐민 둘만 낳고 세상을 떠났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이 라헬에게 인색하신 것처럼 보인다.
1. 성경이 직접 밝히는 이유 — 사랑받지 못하는 자를 돌아보심
창세기 29장 31절은 이유를 감추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하나님은 남편에게조차 외면당한 여인을 먼저 보셨다. 자식은 고대 사회에서 여인의 존재 가치 그 자체였다. 하나님은 야곱이 주지 않은 존중을 레아에게 다른 방식으로 채워 주신 것이다.
레아가 아들들에게 붙인 이름을 보면 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르우벤("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 시므온("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 레위("이제는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 그리고 유다("이제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남편의 사랑을 구하던 여인이 넷째 아들에 이르러서는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다산은 레아에게 주신 위로였고, 그 위로 속에서 레아의 시선이 바뀌어 갔다.
2. 라헬의 불임은 인색함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라헬은 아름다움과 남편의 사랑을 모두 가졌다. 그러나 가장 절실히 원한 것 하나가 없었다. 창세기 30장 1절에서 라헬은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한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답한다. 라헬은 자식을 남편에게, 여종 빌하에게, 심지어 합환채(30장 14절)에까지 구했다. 그러다 30장 22절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라는 말이 나온다.
사라·리브가·라헬·한나, 그리고 엘리사벳까지 — 성경에서 하나님의 큰 뜻이 담긴 아이들은 유난히 오래 닫혀 있던 태에서 태어났다. 이는 그 아이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분명히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라헬의 기다림은 벌이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태어나기 위한 준비였다.
3. 수는 적었으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라헬이 낳은 아들은 둘뿐이지만 그 둘이 남긴 자리를 보라. 요셉은 온 가족을 기근에서 살려 낸 인물이고,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각 한 지파가 되어 라헬의 후손은 결국 세 지파의 몫을 차지한다.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흔히 "에브라임"이라 불렸다. 베냐민 지파에서는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이, 후대에는 사도 바울이 나왔다. 야곱 자신도 죽음을 앞두고 요셉을 특별히 축복했고(창세기 49장 22~26절), 라헬은 야곱의 마음에서 끝까지 첫째 아내였다.
한편 레아는 자식이 많았지만 그 아들들 중 르우벤·시므온·레위는 아버지에게 책망을 받았고, 축복의 중심은 넷째 유다에게 갔다. 유다에게서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계보에서 그리스도가 오신다. 곧 메시아의 계보는 사랑받지 못하던 레아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의 큰 구원 사역(요셉)은 사랑받던 라헬에게서 나왔다. 하나님은 두 여인 중 누구도 버리지 않으셨고, 각자에게 다른 방식의 몫을 주셨다.
4.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
사람의 눈은 "누가 더 많이 받았나"를 세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다. 레아에게는 사랑이 없었기에 자식으로 그를 붙드셨고, 라헬에게는 사랑이 있었기에 기다림으로 그를 하나님께 매어 두셨다. 라헬은 마지막 아들을 낳다가 죽으며 그 이름을 베노니("내 슬픔의 아들")라 했으나 야곱은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으로 고쳐 불렀다(창세기 35장 18절). 슬픔으로 끝난 것 같은 인생에도 하나님은 오른손의 축복을 남겨 두신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하나님의 인색함이 아니라, 두 여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돌보심을 보여 준다. 우리가 받지 못한 것을 셀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잃지 않도록 붙드신 것을 세고 계신다.
야곱의 양 떼 — "얼룩덜룩한 것"과 "흰 반점 있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창세기 30장 32절 이하에서 야곱은 라반의 양 떼 중 무늬 있는 것을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한다. 이때 개역개정은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이라 하고, 쉬운 역본은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거나 흰 반점이 있는"이라고 옮긴다. 같은 말을 두 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원문에는 서로 다른 단어가 쓰였다.
1. 얼룩덜룩한 것(아롱진 것) — 큰 얼룩
히브리어 "탈루"로, 몸에 크고 불규칙한 얼룩 조각이 여기저기 있는 상태다. 마치 물감을 크게 발라 놓은 듯 색이 덩어리로 갈라져 있는 짐승이다. 개역개정의 "아롱진 것"이 이것이다.
2. 흰 반점 있는 것(점 있는 것) — 작은 점
히브리어 "나코드"로, 작은 점이 촘촘히 박힌 상태다. 검거나 갈색인 몸에 작은 흰 점이 뿌려진 것, 또는 흰 몸에 작은 얼룩점이 찍힌 것이다. 개역개정의 "점 있는 것"이 이것이다.
3. 본문에 나오는 그 밖의 무늬
이 단락에는 무늬를 가리키는 말이 두 가지 더 나온다. "얼룩무늬 있는 것"(개역개정 30장 35절, 39절의 "얼룩얼룩한 것")은 히브리어 "아코드"로, 다리나 발목에 띠처럼 둘러진 줄무늬를 뜻한다. 그리고 양 중에 "검은 것"(히브리어 "훔")은 갈색이나 검은빛 나는 양이다. 근동의 양은 대개 희고 염소는 대개 검거나 갈색이어서, 양은 어두운 색이, 염소는 흰 점이나 얼룩이 있는 것이 드문 편이었다. 야곱은 바로 이 드문 것들을 골라 달라고 한 것이다.
4. 왜 이렇게 여러 종류를 나누어 말하는가
라반은 그날로 무늬 있는 것을 모두 골라내어 사흘 길 밖으로 보내 버렸다(30장 35~36절). 야곱에게 남은 것은 순색 짐승뿐이었으니, 사람의 계산으로는 야곱이 얻을 것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도 무늬 있는 새끼가 많이 태어났다. 성경이 무늬의 종류를 이렇게 세밀하게 늘어놓는 것은, 야곱의 재산이 라반의 속임수나 사람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왔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야곱 자신도 뒤에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다"(31장 9절)고 고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