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장
이 장에 대한 메모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밤 (출 4:24~26)
이집트로 가는 길, 숙소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시고 아내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 위기를 넘깁니다. 세 절뿐이고 설명이 없어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꼽힙니다. 앞뒤와 떼어 놓고 읽으면 이해가 안 되고, 22~23절과 이어 읽어야 실마리가 잡힙니다.
1. 바로 앞 구절이 열쇠다
22~23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전할 말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내 맏아들이다.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네 맏아들을 죽이겠다." 그리고 곧바로 24절, 그 말을 전하러 가는 모세 자신을 하나님이 죽이려 하십니다. 왜일까요.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채였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 맺은 언약의 표였고, 창세기 17장 14절은 할례받지 않은 자는 언약을 깨뜨린 것이니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못 박습니다.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이끌어 낼 사람이 정작 자기 집안에서 그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의 맏아들을 치겠다고 선포하러 가는 사람의 집에 언약 밖에 있는 아들이 있는 셈이었습니다.
2. 왜 모세는 아들에게 할례를 안 했을까
본문이 말하지 않으니 짐작만 할 수 있습니다. 십보라는 미디안 사람이었고 미디안에서는 할례를 아기 때가 아니라 결혼 무렵에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봅니다. 십보라가 반대했거나, 모세가 처가 풍습을 따라 미루었거나, 40년 미디안 생활에 언약의 표를 소홀히 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모세는 알면서 미루었고, 하나님은 사명을 맡기신 뒤 그 미룬 것을 먼저 정리하게 하셨습니다.
3. 십보라가 한 일과 "피의 남편"
위기의 순간에 움직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십보라입니다. 돌칼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 포피를 모세의 발에 대며 "당신은 나의 피의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하탄 다밈'인데 정확한 뜻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미디안 풍습에서 할례가 결혼과 묶인 예식이었다면 "피로써 나와 맺어진 남편"이라는 뜻일 수 있고, 아들의 피가 모세를 대신 살렸으니 "피로 구한 남편"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피가 모세의 몸에 닿자 하나님이 물러가셨습니다. 몇 장 뒤 유월절 밤에 문설주의 어린양 피를 보고 하나님이 넘어가시는 장면과 같은 구조입니다. 언약의 피가 있는 집은 살고 없는 집은 맏아들이 죽습니다. 24~26절은 그 유월절을 모세의 집에서 먼저 보여 준 예고편입니다.
4. 왜 맡겨 놓고 죽이려 하셨나
죽이려 하신 것이 목적이었다면 모세는 죽었을 것입니다. 목적은 죽음이 아니라 정리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싸울 사람을 먼저 자기 집에서 언약 앞에 세우신 것입니다. 사명이 크다고 해서 순종이 면제되지 않고, 오히려 사명이 클수록 그 사람의 집부터 언약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밤을 지난 뒤에야 모세는 바로 앞에서 "내 맏아들을 놓아라"고 말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5. 왜 이렇게 짧고 거칠게 기록됐을까
히브리어 원문은 "그를 죽이려 하셨다", "그의 발에 대었다"처럼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름 없이 대명사만 씁니다. 죽이려 한 대상이 모세인지 아들인지도 원문만으로는 확정되지 않습니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사건만 던져 놓은 것은 성경이 종종 쓰는 방식입니다. 야곱이 밤에 어떤 사람과 씨름한 장면(창 32장)이 그렇습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 길에서 하나님과 부딪히고, 몸에 흔적을 남긴 채 다시 길을 갑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다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리
24~26절은 뜬금없는 삽입이 아니라 22~23절 맏아들 선언의 뒷면입니다.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구하러 가는 모세의 집에 언약 밖의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아들의 피가 모세를 살렸고, 그 장면은 곧 다가올 유월절을 미리 보여 줍니다.
